[기획칼럼] 내륙 지역과 아산만 연결
  • 작성일
    2021-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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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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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남도정신문 기획칼럼] 내포포구이야기 - 아산 둔포
    내륙 지역과 아산만 연결
    과거 중부권 세곡집산지
    아산만 어염거래 중심지
     
    둔포(屯浦)는 충청남도 아산시 둔포면 둔포리에 있던 포구로, 조선시대 아산현, 평택현, 직산현 등의 내륙 지역과 아산만을 연결하는 대표적인 포구였다. 아산만은 고려시대 조창인 하양창(河陽倉), 조선시대 공세곶창(貢稅串倉)이 설치되면서 중부권의 중요 세곡집산지이며 조운(漕運)의 거점이었다.
    둔포는 안성천의 지류인 둔포천의 밀물과 썰물이 만나는 구간에 위치하였다. 배가 드나들기에 유리하여 조선 후기부터 포구로 발달하기 시작하여 일제강점기에 번성하였다.
    ‘대동여지도’에 의하면 둔포는 둔포천에서 배가 운항할 수 있는 가항종점(可航終點) 이었다. 보통 가항종점에 위치한 포구는 내륙 지역의 생산물과 바다 생산물이 활발하게 교류되었다.
    해방 전까지만 해도 안성천 하류에서는 강다리, 숭어, 갯장어, 황석어, 밴댕이가 풍성하게 잡혔다. 또 겨울에는 굴과 바지락, 제염업이 발달해서 포구상업과 어업발달의 유리한 조건을 형성했다. 특히 둔포는 소금을 매매하는 곳이어서 소금배들이 많이 드나들었다고 한다. 아산만 일대에서 생산된 어염 가운데 일부는 경양포에서 소비되었지만 대부분은 둔포, 신성포, 시포로 들어와 둔포장에서 거래되었다.
    둔포 일대의 포구들이 번창하면서 곳곳에 장시가 형성되었다. 둔포장도 그 중 하나이다. 1913년에 발표된 경기 남부지역 장시의 거래량을 보면 둔포장이 인근의 성환장, 안중장, 서정리장보다 월등히 앞섰다. 거래 품목에서도 농산물과 함께 아산만 일대의 어염이 함께 거래되어 상인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1905년 경부선철도가 개통되고 근대교통이 철도역을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둔포장은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둔포천으로는 여전히 생선배와 소금배가 들어왔지만 시장이 철도교통에서 유리되면서 상품유통에 크게 제약받았다.
    그리고 광복 이후 근대 교통수단이 일반화되면서 서서히 둔포도 포구로서의 기능이 축소되다가 아산만방조제가 건설된 1973년 이후 포구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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